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메넬리크 2세 (문단 편집) === [[아드와 전투]] === 1889년 5월 2일, 메넬리크는 요한네스 4세의 아들 무엔차 요하네스에 맞서기 위해 울로 지방의 우찰레에서 이탈리아와 조약을 체결했다. 메넬리크는 조약에 서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메랍 마일즈의 북쪽 영토(에리트레아)는 아비시니아에 속하지 않으며 내 지배하에 있지도 않다. 나는 아비시니아의 황제다. 에리트레아라고 불리는 땅은 아비시니아인들이 보유하고 있지 않다. 아비시니아는 자기 영토를 지키지만 외국 땅에서 싸우지는 않는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로부터 에리트레아를 양도받는 것에 합의하고 에티오피아에게 상품, 특히 무기를 에티오피아에게 제공하며 에티오피아 상인들에게 어떠한 차별 대우를 하지 않고 공정하게 대우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이 조약은 에티오피아 정부가 데브레 비젠 수도원을 소유하지만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했다. 그러나 이 조약의 제17조 '에티오피아의 외교권'에 대해 논란이 벌어졌다. 이탈리아 측은 에티오피아가 외교권을 행사할 때 이탈리아의 자문을 __무조건 받아야 한다__고 해석했지만 메넬리크는 이탈리아의 자문을 __받을 수도 있다__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이후 양측의 갈등이 고조화되었고 급기야 1893년 메넬리크는 우찰레 조약의 완전 폐기를 선언했다. 이에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에 내전을 일으키기 위해 티그레이의 라스 무테샤에게 접근했지만 무테샤는 이탈리아의 꼭두각시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1894년 12월 15일, 이탈리아군은 에리트레아 총독 오레스테 바라티에리의 지휘하에 전격적으로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이때 에리트레아인들이 이탈리아군을 에리트레아에서 몰아내려고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일부 에리트레아인들은 에티오피아 진영에 가담해 이탈리아군에 맞서 싸웠다. 1896년 3월 1일, 두 군대는 아드와에서 만나 결전을 벌였고, 메넬리크의 탁월한 지휘에 힘입은 에티오피아군이 대승을 거두었다. 자세한 내용은 [[아드와 전투]] 참조. 이후 메넬리크는 에리트레아를 공격했다가 이탈리아의 분노를 사는 것보다는 이 쯤에서 타협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고 아디스아바바에서 이탈리아와 평화 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서 이탈리아는 우찰레 조약 페기를 인정하고 에티오피아의 완전한 독립을 인정해야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